(다큐멘터리 World War 2 캡쳐)
집에 도둑이 든 적이 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금전적 피해도 거의 없었다. 빈집털이였다.
밤에 잠을 자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나와 가족의 공간을 범죄자가 어슬렁거린 장면이 연상됐다. 내 침대에 도둑이 왔다 갔다 한 상상을 하니 끔찍했다.
내가 사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는 국가가 그렇다. 전쟁을 경험한 적은 없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났던 땅에 우리는 살고 있다. 북한의 6.25세력은 우리의 공간과 땅을 위협했던 적이 있다. 한국이 전쟁에서 졌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나의 침대는 내가 만지고 드러누울 동네 뒷산의 잔디밭일 수도, 환호하는 야구장의 좌석일 수도 있다. 국가가 없다면 뒷산도, 야구장도 없다.
국가의 공간은 전쟁으로 무너진다. 전쟁이 나와는 무관한 너무나 멀리 있는 단어일 수도 있다.하지만 레온 트로츠키의 말처럼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전쟁을 아는 것은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를 아는 것이다.
<전쟁의 탄생>(Why Nations Go to War)은 가치가 있는 책이다. 나에게 관심을 보낸 전쟁을 관심 있게 바라보게 해준다. 시간이 많아서 몰아서 읽으면 모르겠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을 금방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조금씩 읽어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저자인 존 G. 스토신저는 국제외교학 교수이자 유엔의 정치국장 출신으로 국제관계에 정통한 인물이다. 철저하게 인간의 시각이라는 유니크한 측면으로 책을 서술한 점이 돋보인다.
국제정세의 지도를 그린 지난 100여 년간의 큰 전쟁들(2차대전 독소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미국·이라크 전쟁, 걸프전, 르완다 내전 등)의 전황과 운명을 결정짓던 지도자들의 성향, 심리상태까지 총망라해 분석한다.
국내 유일의 전쟁·군사 분야 출판사인 플래닛미디어 같은 전문 출판사가 국내 출판계에도 다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분하게 읽다보면 책의 후반부에 이 책의 결정적 결말이 나온다. 모두 건너뛰고 <10장 국가는 전쟁을 왜 하는가>만 읽어도 책의 메시지 전달에는 무리가 없다.
그 중에서도 정말 중요한 부분은 515페이지에 나온다.
‘전쟁을 일으키는 4가지 시선’이다. 전쟁 발발을 촉진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은 인간의 잘못된 지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스토신저의 지적이다.
4가지 시선과 책에서 표현한 예시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지도자가 바라보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
히틀러는 독일을 세계의 지배민족으로 생각했다. 희망이었지만 동시에 망상이었다.
히틀러의 꿈은 소련의 얼어붙은 폐허 위에서 산산 조각났다.
김일성은 2개월 내에 한국전쟁에서 승리하리라 생각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지상전 및 공습의 확대가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다 줄 것 이라 희망했다.
(2) 적의 성격을 보는 지도자의 관점
히틀러는 소련이 실제 어떤 나라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소련의 역사와 영토의 깊이를 알지 못했고, 소련을 우수한 독일인을 위해 노예로 부려 먹을 수 있는 인간 이하의 야만인들이 살고 있는 나라로 생각했다.
미국은 베트남의 특수성에 대해 무지했다. 베트남전은 공산주의 vs 반공주의의 전쟁이 아니었다. 미국의 대통령 린든 존슨은 호치민이 미국을 자신들이 몰아냈던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의 후계자로 보고 있다는 사실 몰랐다.
힌두교도는 쇠고기를 먹지 못하지만 이슬람교도는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다. 이들은 서로 상대방을 자신들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되는 존재로 생각했다. 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종교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다큐멘터리 World War 2 캡쳐)
(3) 자신을 향한 적의 의도에 대한 지도자의 관점
지도자가 적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높다. 아이젠하워는 중국이 한국전쟁때 개입한 것처럼 베트남의 프랑스군에 대해서도 움직이리라 확신했기 때문에 베트남에 첫 군사고문단을 파견했다. 미국은 이 결정으로 인해 베트남이라는 함정으로 빠져들었다.
(4) 지도자가 적의 능력과 힘을 보는 관점
맥아더가 한국전쟁에서 중국과의 국경지역을 향해 북진하는 동안 그는 중국이 전쟁에 개입할 능력이 없다고 굳게 믿었다. 일시 후퇴했을 때도 그는 중국군이 피로에 지쳐 휴식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맥아더는 결국 38선 이남까지 밀렸다. 맥아더는 자신의 정보계통을 이용해 중국의 실상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전쟁을 2년 동안 연장하게 됐다.
5대에 걸친 미국 대통령은 지상이나 공중에서 베트남을 더 압박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미국이 북베트남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할 때 전쟁은 끝났다.
(영화 '맥아더' 캡쳐)
4가지 시선이나 전쟁의 정통한 분석 말고도 이 책의 품격을 높이는 것은 저자의 문학적인 문장이다. 요소요소 버리고 싶지 않은 텍스트가 지루해질만 하면 뇌를 자극한다. 번역(임윤갑 역)이 기본적으로 잘됐기 때문 일 것이다.
아래와 같은 표현은 인식, 환영, 공포, 희망, 악몽이라는 5개의 상징 어구를 이용해 30년 베트남 전쟁을 완벽하게 요약한 문장으로, 알아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될 문구다.
베트남은 20세기의 30년 전쟁이었다. 한 세대가 흘러가는 동안 5명의 미국 대통령이 인도차이나의 현실을 잘못 인식했고 자신들이 만든 환영으로 그 자리를 채웠다. 그 환영은 처음에는 공포였으나 나중에는 희망으로 변했다. 이러한 공포와 희망은 현실을 분명하게 파악하는데 걸림돌이 되었고 마침내 부정할 수 없는 악몽이 되었다.
서두의 트로츠키의 말은 이제 수정해야 한다. 당신도 전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쟁을 잘못 다루면 당신의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 갈 수 있다.
베트남전을 실패하고 존슨은 역사학자 도리스 굿윈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의 일생을 모두 묶어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해서 대답해줄 것”을 요청받았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린든 존슨
“나는 행복하게 위대한 사회와 결혼했고,
그리고 베트남이라 불리는 몹쓸 것이 찾아와 모든 것을 망쳤다.”
By ThinkTanker (creationthinktank.tistory.com)
PS...
이 책의 메시지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응용할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 드라마 <미생>의 가장 극적인 전쟁 장면과 연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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