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눈물 흘리는 이진아, SBS K팝스타 화면 캡쳐)
K팝스타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신인들의 새로운 음악 해석도 재밌지만 심사위원 3명의 심사평이 창의성 기법의 측면에서 차용할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물과 현상에 대해 판단을 한다. 그리고 겉으로든 속으로든 표현을 한다. 박진영, 양현석, 유희열도 매번 다른 음악을 듣고 판단을 한다. 역시 겉과 속으로 자리 잡고 있는 표현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다양하게 방송에서 드러나는 화면은 창조의 재료탱크안에 넣을 수 있다.
25일 방송에서는 유희열의 창의적 심사평이 관심을 끌었다.
몇 주 전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도 200~300곡은 쓴 것 같은데 (이)진아씨 보다 좋은 곡이 없는 것 같아요.”
쉽게 나오기 힘든 심사평이었다. 유희열은 프로 베테랑 작곡가다. 그런데 한 아마추어 신인 음악가에게 유희열의 이런 자기고백적인 발언은 엄청난 파격이었다. 진실은 두 가지다. 유희열은 매우 솔직한 사람이라는 것과 그녀의 음악이 매우 뛰어났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진아의 음악은 최근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25일 방송에서는 달랐다. ‘두근두근 왈츠’를 부른 이진아에게 박진영, 양현석은 변함없이 찬사를 보냈지만, 유희열은 혹평을 던졌다. 한마디로 새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진아는 눈물을쏟았다. 하지만 적어도 싱크탱커에게는 새롭게 들렸고 좋았다. 호감을 나타낸 양현석은 물론, 박진영도 “이곡이 가장 좋은 곡일 수 있다”는 표현을 썼다.
그럼 음악의 문제 말고 다른 문제가 있었을까. 무엇이 그에게 혹평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했을까.
영상을 보다가 이진아가 노래를 부르기전 했던 발언이 귀를 잡아끌었다.
“고등학교 때 만든 노래”...이 발언이 혹평의 실마리는 아니었을까. K팝스타를 볼 때 가장 강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참가자들이 준비기간 엄청난 연습과 노력을 한다는 점이다. 자작곡을 준비하는 사람은 창작의 고통, 직전 호평을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새로운 무대의 대한 압박 등 모두 창의성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진아는 고.등.학.교.때 만든 노래를 가지고 나왔다. 물론 새롭게 편곡도 하고 변화를주었겠지만 ‘두근두근 왈츠’의 원래 소속은 K팝스타의 치열한 준비시간이 아닌 고등학교 때의 습작시간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것을 공개적으로 심사위원들 앞에서 천진난만한 미소로 밝혔다.
당신이 만약 신입사원 프레젠테이션을 심사하는 면접 심사관이라 치자. 그런데 어떤 취업준비생이 자신이 만든 문서가 고등학교 때 만든 것 (가공했다고 해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치열하게 입사를 준비해서 문서를 만든 다른 사람들을 뒤로하고 당신이 그 취업준비생에게 높은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당신이 만약 음악 제작자라고 하자. 어떤 음악신인의 음반을 제작해야 하는데 그 곡이 고등학교 때 만든 곡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해보자. 그럼 10곡 중 그 곡을 몇 번째로 배치해야 할까. 싱크탱커도 유희열처럼 ‘9번 트랙 소품’으로 배치했을 것이다. 최소한 1번 트랙은 아니다.
처음에 고품질의 상품이라 생각했는데 고등학교때 만든 상품이라면 순간적으로 저품질로 될 수 있다. 아니면 처음부터 새로운 노력이 가미되지 않은 고등학교 상품이라고 예단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이어진 유희열의 심사평에서 의미를 추가할 수 있었다.
“초심의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했는데) 그러기에는 K팝스타에서 제일 잘하는 것 해야 할 것 같다. 예전에 보여준 한음 한음 아끼면서 그 긴 시간동안 (고등학교때 미리 만든 곡이라면 이 곡은 긴 시간의 노력은 아닌 것으로 그에게 비춰질 수 있다.) 음 조합을 했던 장점을 디테일하게 매달려서... 다만 고등학교 때 썼던 곡이니까... 감안해서 들었다.”
이 심사평 직전 이진아의 고등학교 발언과 노래를 듣는 중 화면에 오버랩된 유희열의 매의 눈빛이 떠올랐다.
이진아의 고등학교 발언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필요에 의한 거짓말이 필요할 수 있다는 교훈을 느끼게 한다. 자신이 어떤 창작물을 만들고 누군가에게 심사를 받아야 한다면 절대로 여드름이 피어나는 고등학교 때 만든 것이라 말할 이유가 없다.
로버트 펠드먼의 저서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를 보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목적에 따라 수시로 거짓말을 한다고 말한다. 부정적인 거짓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선의의 거짓말은 생존을 좌우하기도 한다. 이진아에게 “이곡은 직전 무대와 달리 새로운 감정을 넣는데 주력하여 멜로디를 고민해서 만들었다. 새로운 작곡으로 일주일이 힘든 시간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했다. 10분에 세 번도 필요없었다. 한 번만 했으면 됐다.
유희열은 치밀했다. 음악 선배로서 따끔한 충고가 필요한 시점이라 판단했을 수도 있다. 사실 이런 혹독한 평가는 마음에 드는 참가자를 캐스팅하기 위해서 3명의 심사위원이 여러 가지 미사여구를 써서 자신의 회사에 오게 하려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자칫 캐스팅을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유희열은 이진아의 무대 이후 자신이 캐스팅 1순위인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 놓고 혹평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참가자이지만 마치 마음에 들지 않는 참가자인 것처럼 심사했다. 그리고 혹평을 했던 창조적 반전에 트레이드 마크인 음흉한 눈빛을 보내며 뻔한 반전으로 해피엔딩 시켰다.
“진아야 내 마음 알아주겠니. 널 캐스팅할게.”
반전에 반전은 섬싱(Something)이 아닌 낫싱(Nothing)이다.
유희열은 심정적으로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그는 이 순간 크리에이터였다.
그러나 이진아는 선의의 거짓말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그녀의 음악과 목소리만큼이나 너무나 순수한 소녀였다.
By ThinkTa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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