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올해도 또 이런 모습을 연출할 수 있을까.
사진 출처 및 권리: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Edit By <창조의 재료탱크> ThinkTanker)
[변함없는 2015년 정규시즌 1위,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는 왜 강한가]
['불운의 대명사' 윌리 핍의 숨겨진 진실]
1925년 6월 1일과 2일은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역사에 분기점이 된 매우 중요한 날이다.
6월 1일은 1루수 주전으로 변함없이 윌리 핍이 출전한 날이고, 2일은 루 게릭이 선발 출장한 날이다. 이날 두통을 호소한 핍을 대신해 경기에 나선 게릭은 워싱턴 세네이터스와의 경기에서 2루타 1개를 포함, 5타수 3안타로 맹활약했다. 이후 게릭은 14년 동안 2,130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메이저리그의 전설 ‘철마’가 됐다.
반면 핍은 두통 이후 자기 자리를 게릭에게 잃고 3년 뒤 유니폼을 벗었다. 그는 게릭을 빗대 “나는 가장 비싼 아스피린을 사먹었다”는 말을 남겼으며, 핑계나 꾀병으로 잠시 비운 자리가 선수 경력에 불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대명사가 됐다.
여기까지는 야구계와 팬들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런데 다시 살펴볼 것은 게릭이 처음으로 선발 출장한 다음날인 1925년 6월 3일이다. 과연 그 시절 메이저리그는 한 경기에서 어떤 선수가 잘했다고, 또는 한 경기에서 원래 주전이 빠졌다고 선수의 운명을 바꿔버리는 매몰찬 곳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6월 3일 게릭이 3타수 무안타로 그치자 다시 핍이 출전했기 때문이다. 핍은 게릭이 등장하기 전 뉴욕 양키스의 간판이었다. 1916년과 17년에는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이었으며, 1921년과 1922년 정규시즌 1위, 1923년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었다. ‘게릭과의 운명의 6월 2일’이 있기 전 해인 1924년에는 2할9푼5리 114타점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 선수였다.
감독 밀러 허긴스의 신임도 여전했다. 실제로 허긴스는 오늘날 타이 콥, 배리 본즈, 스탠 뮤지얼 등과 함께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좌타자 10명으로 선정된 게릭이 당시 왼손 투수에 약한 것을 참지 못했다.
후보 야구 선수가 감독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시간은 선발 출장 이후 10경기가 가장 중요하다. 22살의 게릭은 6월 2일을 포함해 이후 10경기에서 38타수 10안타(2할6푼3리)를 쳤다. 그러나 좌투수가 선발로 등판한 경기에서는 16타수 2안타 1할2푼5리로 극도로 부진했다. 그때까지는 아주 강한 인상을 감독에게 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허긴스는 같은 좌타자임에도 32살의 베테랑 핍을 경기에 다시 출장시키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핍은 재차 얻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6월 2일 이후 10경기에서 게릭이 좌투수에 부진할 때 핍은 같은 기간 딱 한 차례밖에 타석에 나서지 못했고, 중요했던 6월 한 달간 고작 7타석에 나왔다.
결국 1925년 최종 성적은 프로 경력 15년 동안 최소 경기인 62경기에 출전해 2할3푼(178타수 41안타)에 그쳤다. 진실은 두통이 핑계나 꾀병이 아니었던 것이다. 1953년 인터뷰에서 핍은 1925년 6월 2일 베팅연습 도중 머리에 공을 맞았고 이후 두통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커리어가 하락하고 '불운의 대명사'가 된 이유가 두통으로 게릭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무리가 있다. 바로 이듬해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뒨 1926년 155경기 출장 167안타 99타점으로 MVP 후보로까지 완벽히 부활했기 때문이다. 핍은 2년 뒤 은퇴했는데 그땐 이미 의학 수준이 낮았던 1920년대의 35세라는 많이 나이였다.
핍의 이야기는 100년 전 이야기다. 그가 왜 1925년에 부진했는지, 과연 그것이 두통만의 이유였는지, 또 이듬해 두통이 있다는 선수가 곧바로 어떻게 부활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핍은 1965년 사망했다.
다만 1925년과 1926년 핍의 인생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통해 한 가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그가 기회의 소중함과 불안함을 잊고 있지는 않았을까라는 가능성이다. 핍은 11년째 팀의 간판이었다. 누구도 그를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보다 10살 어린 풋내기 게릭은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불안함은 없었다. 그래서 두통으로 몇 경기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때론 마음먹은 것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부상 이후 복귀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두통의 후유증과 게릭의 맹활약에 신체와 정신은 이전과 다른 조급함과 불안함에 잠식당했다.
그는 그때 기회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가 됐고 다시 이를 악물었다. 오늘날 프로야구에서도 트레이드가 된 선수는 박병호 처럼 이후 완전히 다른 선수로 탈바꿈 하기도 한다. 그는 마지막 꽃을 피우고 은퇴했다. 아주 위대한 타자로 기억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핍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좋은 타자로 이름을 남겼다. 그는 결코 불운의 대명사가 아니었다.
100년이 지났어도 핍이 느꼈던 기회의 소중함과 불안함은 현대의 야구 선수에게도 적용된다.
야구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젊음’으로 한정된다. 젊음이 지나가면 기회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몇 년 전 방송에서 어느 2군 선수는 “솔직히 나쁜 생각이지만 1군 선수 누구 한 명이 부상당해 내가 (1군에)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조금은 매정한 이야기였지만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라 그 선수가 나쁘게 보이기보다는 이해와 동정의 시선으로 수긍할 수 있었다. 그 선수는 기회의 소중함을 퓨처스리그에서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사진 출처 및 권리: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기회의 소중함이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잘 드러나는 팀은 삼성 라이온즈다.
최형우(32), 장원삼(32), 채태인(33)... 이 3명의 공통점은 뭘까.
우선은 모두 시즌 도중 부상 경력이 있었던 선수라는 것이 첫 번째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다. 이 3명은 부상 도중, 또는 부상 이후 복귀해서 모두 아래와 같이 복사기처럼 거의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없어도 팀이 잘 나가는 것이 불안했다.”
선수에 따라 우스갯소리로 말한 선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가 담고 있는 뉘앙스는 다르지 않았다. 3명의 이 말은 의미심장했다. 보통 야구 선수가 수훈 선수 인터뷰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팀이 이겨서 좋다”이다.
그런데 이 3명은 팀이 잘 나가는 것이 오히려 불안했다고 했다. 이유는 자신이 없어도 팀 성적이 좋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의 존재가치가 누군가로 인해 잊힐 수 있다는 불안함이 녹아있었다.
실제로 그랬다. 지난해 최형우가 빠져있을 때 삼성은 4번 타자 없는 장타력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 봤다. 장원삼이 빠진 선발 로테이션에 구멍이 날 것이라 예상됐다. 그러나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른 선수들이 자리를 메웠다.
올해 채태인은 지날 4월 완전히 아물지 않은 몸으로 복귀했다가 다시 부상을 당해 엔트리에서 빠졌다. 그는 왜 서둘러 복귀했을까. 연일 미디어에서 얼굴 잘생기고 야구 잘하는 선수로 화제가 되고 있는 구자욱이라는 신예 때문에 이러다 나의 1루수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채태인의 조기 복귀 장면은 현재의 삼성이라는 팀의 분위기가 어떤지, 왜 그들이 통합 4연패를 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이제 5월 두 번째 주부터 완전히 몸을 정비해 다시 복귀를 앞두고 있다.
이 3명뿐만이 아니다. 과거 박석민, 이승엽, 배영섭, 김상수 등도 모두 부상으로 빠져있었지만 삼성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특히 류중일 감독이 수비 때문에 대체 불가라는 유격수 김상수는 2013년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정병곤이 공백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조동찬을 대체한 김태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압박감이 매우 큰 한국시리즈라는 결정적인 순간 수비의 핵 팀의 키스톤 콤비가 바뀌었는데도 삼성의 우승 전선에는 이상이 없었다.
올해 가장 최근에는 박한이까지 우동균이 대신했다. 우동균은 한 방송에서 부상 중인 박한이 선배에게 한마디 하라는 질문에 “선배님 아주 오래, 좀 푹 쉬다 오세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악의 없는 즐거운 경쟁 분위기였다.
(사진 출처 및 권리: 삼성 라이온즈 월페이퍼)
삼성의 포지션이 경쟁력이 있고 이것이 팀 전력의 핵심 요소라는 사실은 모두 아는 식상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 경쟁력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기회의 소중함과 불안함도 주목해야 한다.
기회의 소중함과 불안함이란 말은 사회생활의 생존과 접목된 인간의 정신과 관계된 말이다. 그리고 정신이 지배하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이기도 하다. 자기 자리에 대한 강한 애착과 포지션 목표에 대한 마음이 강한 선수들이 많은 팀은 강팀이 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현재 삼성의 주축 선수들은 그 기회의 소중함을 잘 아는 선수들이 많다. 최형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여러 차례 스스로 우여곡절이 많은 선수라고 했다. 최형우는 1군에서 고작 6경기만 뛰고 삼성에서 2005년 방출됐다. 수비의 약점과 기량 부족으로 수년 동안 2군에 머물렀다. 어렵게 기회를 잡았고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가 됐다.
박석민과 채태인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관중도 없는 한낮의 뙤약볕에서 힘들게 경기를 했던 선수들이다. 채태인은 2007년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MVP로 선정됐지만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퓨처스리그 올스타전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부상을 당한 사이 3명의 능력과 유사한 팀 내의 다른 선수들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해 예전의 시절로 돌아가라고 하면 아마 죽기보다도 싫을 것이다. 그들이 가진 불안함의 이유에는 삼성이 자랑하는 육성 시스템 비비아크(Baseball Building Ark)가 현실로 자리 잡고 있다. 언제든 박해민과 구자욱 같은 선수들이 나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
물론 삼성 이외의 다른 팀 선수들도 2군 경기 경력 등 어려움을 딛고 주전으로 성장한 선수들이 많다. 그러나 어떤 팀의 어떤 선수, 어떤 포지션은 실력은 부족함에도 과거의 명성이나 이름값으로 자리를 철밥통처럼 유지하는 선수들도 있다. 못해도 자리를 크게 위협받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에는 이런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못하면 곧바로 누군가가 나의 자리를 없앨 수도 있다는 불안함, 내가 가진 기회의 소중함을 공개적으로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구단은 삼성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통합 5연패를 목표로 하며 2000년대 7번의 우승을 차지한 삼성이란 야구팀의 현주소다.
야구에서 ‘포지션’이란 말은 실체나 생명이 없는 무생물의 추상적인 언어다. 그러나 삼성의 포지션에는 생동감이 살아있다. 자리를 빼앗고, 지키려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긍정적인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삼성에는 윌리 핍의 자리를 위협하는 수많은 루 게릭의 후예들이 그 생태계에서 숨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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