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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이진아와 '큰바위 얼굴'...'벌써 일년' 나얼 가상협연

 

(사진: SBS & calvin.edu, Edit By ThinkTanker)

 

 

[이진아, 그녀는 왜 점점 예뻐질까]
[이진아·정승환·나얼·윤건, ‘가상 콰르텟’ 뮤직 콜라주]

 

싱크탱커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소설 가운데 하나가 너새니얼 호손의 <큰바위 얼굴(Great Stone Face)>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65년 전인 1850년에 발표된 고전 소설이다.

 

어린 시절 이 소설이 내게 준 울림과 감동은 상당한 시간 나를 지배했다.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설의 줄거리는 과거 교과서에도 실렸던 만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어린 시절 주인공 어니스트는 어머니로부터 마을 계곡의 산자락에 있는 바위 형상인 큰 바위 얼굴과 똑같이 생긴 위대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설을 전해 듣고, 이를 종교처럼 믿고 살아간다. 인간을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와 가르침으로 지켜봐 주는 큰 바위 얼굴의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성장한다.

 

소년이었던 어니스트가 청년, 장년, 노년에 이르는 시간, 그 사이 마을에는 돈 많은 갑부부터, 전쟁영웅, 정치인, 자연을 노래하는 시인 등 ‘큰 바위 얼굴’과 닮았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모두가 아니었다. 진짜 ‘큰 바위 얼굴’은 ‘큰 바위 얼굴’을 그토록 믿고 기다렸던 사람, 어니스트 자신이었다.

 

이 소설의 주제는 여러 가지이다. 자연의 진리와 깨달음부터, 인생이 주는 삶의 의미 등 작가 호손은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이 소설의 주제는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자신을 만들어간다’이다.

 

이 말에는 “생각하는 대로 자신이 만들어진다”도 포함되어 있다. 잘생기고 못생기고 예쁘고 아니고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살면서 느껴왔다.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는 인간의 얼굴을 바꾸기도 한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믿는 밝고 건전한 마인드의 사람들을 만나보면 실제로 밝고 푸른 긍정의 에너지가 얼굴에 흐른다. 못생긴 여자가 멋지고 예뻐 보인다. 추남이 미남으로 둔갑한다. 미녀는 더 아름답게, 미남은 더 잘생기게 보인다.

 

반대로 어둡고 불건전한 생각이 오랜 기간 자리 잡은 사람이나 지인을 만나보면 얼굴이 변해있다. 잘생겼던 남자인데 얼굴이 심하게 뒤틀려있다. 눈빛은 생기를 잃고 죽어있다. 정체를 알기 힘든 검회색 어두운 기운이 그 사람을 장악하고 있다. 미녀였던 여자도 나태와 권태가 합쳐져 페이스 밸런스가 무너져있다. 이건 성형이나 메이크업으로도 감출 수 없다. 마음의 문제와 맥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쓰는 언어도 부정적 언어가 대부분이다.

 

그때부터 나는 인간의 얼굴은 상당 부분 자신의 생각이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 이 생각을 또 실감했다. 29일 방송된 K팝스타에서 노래하는 이진아의 얼굴을 보면서 그랬다.

 

그동안 싱크탱커는 이진아를 응원하는 그녀의 팬이라 수차례 밝혀왔다. 그녀가 가진 크리에이터적인 측면, 음악적 창의성과 신선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의 음악(자작곡을 또 부르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포함되어 있다!)보다는 그녀의 얼굴이 더 보였다.

 

(사진 출처 및 권리: SBS)

 

이럴 수가!

 

그녀의 얼굴이 너무 예뻤다. 미모가 놀라울 정도로 눈부셔서 TV 해상도가 잘못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은색 원피스와 검정색 구두, 하얀색 건반은 산울림의 ‘회상’을 노래하는 그녀의 이미지와 함께 절묘한 하모니를 이뤘다. 피아노 앞에서 살포시 눈을 감고 노래하는 이진아의 얼굴은 적어도 내게는 가공된 성형 미인이나 미스유니버스 100명보다도 훨씬 예뻤다.

 

이것은 물론 수사법상 과장법이다. 하지만 이런 과장법을 쓰고 싶게 만든 대상인 이진아의 얼굴 자체가 내게는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다.

 

처음 방송에 등장해 이진아가 ‘시간아 천천히’를 불렀을 때 그녀의 얼굴은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눈보다는 귀가 먼저였다. 그런데 볼 때마다 점점 예뻐진다. 메이크업 효과와 조명 및 무대 연출(이진아를 담당하는 스타일리스트와 노래의 분위기에 맞게 무대를 훌륭하게 꾸미는 제작진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도 물론 그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중심 요소는 아니다.

 

오늘 이진아의 얼굴에서 소설 <큰 바위 얼굴>이 떠올랐다. 이진아가 그동안 만든 맑고 깨끗한 음악들, 창의성 넘치는 가사와 멜로디가 그녀의 얼굴을 점점 그녀의 음악처럼 예쁘게 만들어주지는 않았을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어둡고 불건전한 생각이 오랜 기간 자리 잡은 사람에게서는 현재의 이진아 같은 얼굴은 결코 나오기 힘들다.

 

이진아가 소설속 어니스트처럼 내가 어떤 미녀와 똑같이 예뻐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과 푸른 희망은 품었을 것이다. 싱크탱커는 이진아가 가진 이런 생각과 4살부터 피아노를 치며 현재까지 쌓아온 진정한 노력이 시간이 지나며 ‘오늘의 얼굴’을 만든 하나의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소설 이외에도 오늘 또 하나 좋았던 것은 가요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이진아가 불렀기 때문이다. 브라운아이즈의 ‘벌써 일 년’이다.

 

‘벌써 일 년’은 내게 뚜렷한 추억을 주는 곡이다. 사실 이 노래는 과거 룸메이트였던 선배가 좋아했던 곡이다. 그 선배는 당시 ‘벌써 일 년’을 귀에 달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다. 처음에 큰 느낌은 없었던 노래였는데 세뇌가 될 정도로 나 역시 강제적으로 듣다보니 정말로 훌륭한 노래임을 알 게 됐다.

 

나얼이라는 독보적인 보컬과 노래를 작곡한 윤건의 음악성이 어우러진 ‘벌써 일 년’은 여러 사람들에게 애창곡이 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뛰어난 가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노랫말을 쓴 한경혜는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 등 지금까지 수많은 명가사를 만든 대한민국 대표 작사가다.

 

 

‘벌써 일 년’ 역시 최고 작사가상을 받은 노래이다. 노래 중에 <창조의 재료탱크> 안에 담고 싶은 가사는 “새로 만들 추억은 하나뿐 내 기다림과 눈물속...너일뿐”이라는 가사다.

 

추억은 본래 과거형이다. 지나간 시간이다. 그런데 한경혜는 이 추억에 미래를 입혔다. '만들어갈 추억'으로 표현했다. 시간과 언어의 전복이라는 수준 높은 기법을 통해 추억의 의미를 확장시켰다. 그런데 그 미래의 추억이 또 오직 너라는 하나의 지향점으로 향해있다.

 

짧지만 강한 이런 창의적 표현의 가사가 훌륭한 멜로디에까지 실리면 그때 그 노래는 명곡이 된다.

 

그래서 이진아, 정승환, 나얼, 윤건 4명의 목소리가 합성된 가상 콰르텟 ‘벌써 일 년’은 지금까지 만든 뮤직 콜라주 가운데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한 곡이 됐다.

 

By ThinkTa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