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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혈관을 꿈틀거리게 만든 격투신 TOP10

 

격투를 미학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위험성을 동반한다.

 

자칫 격투의 미학격투의 미화로 변질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 기저에는 격투는 폭력이라는 측면이 깔려서 일 것이다. 하지만 격투를 신체의 특정 움직임이라는 눈으로 바라보면, 일정 부분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영역 안으로 수렴될 수 있다. 움직임을 잘 만들어내야 좋은 격투 영상이 탄생할 수 있다.

 

신체의 움직임을 설계하는 작업은 여러 학자들이 창조자의 작업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하워드 가드너는 <열정과 기질>에서 현대 무용의 역사로 평가받는 마사 그레이엄을 몸의 움직임을 창조하는 능력이 뛰어난 크리에이터로 수록했다. 발레와 격투신은 움직임의 동선을 제작하는 시나리오가 있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 점에서 싱크탱커는 무술, 스턴트맨 감독이나 격투게임 제작자들, WWE 레슬링 액션 트레이너들 까지도 창조자로서 조금은 더 좋은 평가를 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똑같은 격투신을 본 적이 있나. 수천가지 영화에서 나오는 격투장면도 수천가지다. 그래서 가끔은 격투신이 발레나 무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미칠 때도 있다.

 

막고 찌르고 때리고 구르는 이소룡,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에서 승룡권을 공중에서 경합하는 류와 켄, 스피어를 작렬하는 로먼 레인즈와 맞고 괴로워하는 척 구르는 상대 레슬러까지. 그들의 복장을 모두 발레복으로 바꿔 입힌다면 격투의 동작들은 춤을 추는 격정적인 발레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기도 한다.

 

이하의 10가지 영화 드라마속 격투장면들은 이같은 관점에서 골라본 것이다. 남자라면 한번 쯤 격투 장면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일으킨다. 누군가의 신체적 움직임을 보고 당신의 혈관이 조금이라도 꿈틀거렸다면 그것은 그 장면을 만든 제작자가 크리에이터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10. 소림사18동인 (少林寺十八銅人: 18 Bronzemen, 1976)

 

 

 

 

지금 보면 액션성은 촌스럽기까지 하다. 발레로 치면 초등학교 학예회 수준의 격투장면이 무슨TOP10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상징성 때문에 이 격투신을 뺄 수는 없었다. 역경을 딛고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만고불변의 성공스토리를 격투로 담아낸 것이 결정적이다. 성공을 위해 소림사의 특정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 묘하게 계속 시선을 사로잡았다. 온몸을 금칠로 도배한,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충격적인 비주얼을 이미 70년대 무협영화에 선보인 것만으로도 참신했다.

 

9. 드라마 야인시대 (野人時代, 2002)

 

 

2002년 월드컵 이후 또 다른 열풍이었다. 정말 잘 만든 남자드라마. 누가 누가 싸워서 누가 이기나의 수많은 가상 격투 조합을 탄생시켰다. 그중에서도 김두한과 신마적의 결투신은 김두한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부상하는 중요한 시점이었다. 김두한이 신마적에게 목이 졸리던 순간 터진 이혁재의 대사 두한아! 여기서 지면 다 끝장이여는 실제 상황이었어도 김두한에게는 정말 지면 끝장인 상황이었을 것이다. 결투 초반 발차기 하나는 쓸 만하구나라는 신마적의 인정처럼 23살의 젊은 안재모는 그것이 대역이었든 아니든 인상적인 발차기 액션을 선보인다.

 

8. 비트 (Beat, 1997)

 

 

요즘 한국영화의 격투신과 비교하면 평범한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정우성이 연기한 민이라는 캐릭터는 남자의 로망을 그대로 복제했다는 측면에서 뜨거웠다. 남자라면 민처럼 되고 싶기도 하고, 또는 민이 내 친구였으면 하는 생각을 일으킨다. 당구장에서 빼앗긴 돈을 찾아오는 신도 멋져서 고심하다 태수의 복수를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 조폭들에게 뛰어드는 독고다이정신이 돋보인 마지막 격투 장면을 선택했다.

 

7. 아저씨 (The Man from Nowhere, 2010)

 

 

친구를 위해서소녀를 위해서로 바뀌었다. 90년대 비트의 정우성이 20여년 만에 원빈으로 이어진 느낌이다. 이 격투장면은 유하 감독의 계산된 분위기 설정이 돋보였다. 격투의 상대 배우 타나용 웡트라쿨은 영화 초반부터 뭔가 있는 듯 한 조용한 고수의 캐릭터로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가 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대사도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느낌의 힘을 실리게 한다.

 

결국, 마지막 대결장면에서 총을 내려놓고 칼싸움을 선택하며 끝까지 있어 보이는악역의 풍미를 잃지 않는다.  후반부 원빈과 일대일 싸움은 지금 연속사진으로 볼때는 빠르게 보이지만 실제 영화속에서는 동작이 느리다. 그러나 묵직하다. 한 순간에 생과 사가 결정 날 수 있다는 극한의 긴장이 짙은 회색빛으로 흐른다.

 

6. 말죽거리 잔혹사 (Spirit Of Jeet Keun Do, 2004)

 

 

나와 개XX야! 니가 싸움을 그렇게 잘해 옥상으로 따라와.” 기막힌 선전포고였다. 이 멘트만으로 TOP10에 들어갈 충분한 자격이 있다. 학생의 설익은 액션을 학생처럼 잘 표현했다. 쌍절곤 격투도 괜찮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권상우가 굳이 무방비 상태의 이종혁을 그런 식으로 영웅답지 않게 선빵을 날려야 했을까. 옥에 티였다.

 

 

5. 정무문 (Fist Of Fury, 1972)

 

 

어찌 정무문 하나뿐일까. 이소룡이 나온 모든 영화의 모든 격투신이 해당된다.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인간 캐릭터. 40년이 넘게 그는 신화다. 자칫 이소룡의 카리스마 때문에 그의 이미지가 강렬함 일변도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이소룡이 격투를 대하며 표현한 유명한 명언은 그가 얼마나 유연함을 갖춘 뛰어난 창조적 사고자였는지를 잘 말해준다. 물은 컵에 넣으면 컵이 되고, 병에 넣으면 병이 되고, 주전자에 넣으면 주전자가 된다. 물은 깨질 수 도, 부러질 수 도 있다. 그런 것을 단련해 물이 되어라.”

 

4. 엽문 2 (IP MAN 2, 2010)

 

 

 

격투가 내셔널리즘을 취하면 더욱 힘이 붙는다. 하나의 주먹, 하나의 발차기가 애국심이라는 옷을 입으면 어느 정도의 감동은 기본적으로 탑재 할 수 있다. 영춘권과 복싱이라는 이종간 격투기를 뛰어난 카메라 워크를 통해 잘 담아냈다. 영화 중간 견자단과 홍금보의 격투신도 마치 두 명의 발레리나를 보는 듯 훌륭했다. 견자단이 표현한 영춘권은 여성적인 권법이라는 저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실즉허 허즉실 (實則虛, 虛則實), 부드러움 속의 강함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3. 엽문 1 (The Legend Of Ip Man, 2008)

 

 

 

견자단은 세계스턴트어워드 외화부문 최고액션상을 받을 만 했다. 초창기 이연걸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모두가 주목하는 마지막 쿵푸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 격투장면에서 그는 쌀 때문에 죽은 동료를 위해 수십 명의 일본 헌병들을 상대하는 사지로 스스로 걸어간다. 하지만 여러 가지 고난도 꺾기 기술을 통해 상대의 전투력을 불능으로 만들어버린다. 엽위신 감독의 연출도 한 몫 했다.

 

2. 살파랑 (殺破狼, 2005)

 

 

싱크탱커는 이 격투 장면만 20번 넘게 본 것 같다. 매우 빠른 현대 무용을 보는 느낌이다.견자단의 상대역 오경은 여러 중국무술대회에서 우승한 진짜 무예가다. 단검을 이용해 속사포 같은 래퍼처럼, 테크토닉을 춤추는 디제잉 댄서처럼, 잘 설계된 컴퓨터 기계같이 움직이는 그의 동작은

심장 박동수를 높인다.

 

살파랑은 14개 별들 중에 칠살(七殺, 지배), 파군(破軍, 파괴), 탐랑(貪狼, 탐욕)세 가지 별에서 나온 인간의 운명을 의미한다. 이 격투장면은 승리의 탐욕과 상대를 지배하고자 하는 파괴적 감정이 극명하게 대립하는 최고의 결투신이다. 1위가 없었다면 단연코 1위에 올라도 손색이 없는 명장면이다.

 

1. 레이드 2 (The Raid 2: Berandal, 2014)

 

 

 

예술이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은 격투신이었다. 이 장면을 보고 혼자 박수를 쳤다.

어찌 이런 아트를 만들어 냈을까. 다 필요 없다. 그냥 최고다.

격투가 뿜어내는 미학의 향연은 레이드2의 마지막 30분을 보면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수식어가 죄악이다.

 

 

ps.

 

성룡은 매우 좋아하는 배우지만 그의 격투신은 TOP10 안에는 선정되지 못했다. 성룡의 액션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개인차가 있겠지만,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피가 튀지 않는 착한 액션을 구현하는 그의 착한 마음이 담긴 착한 격투 영상이 혈관까지 꿈틀거리게는 하지 못한 것 같다.

 

By ThinkTanker (creationthinktank.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