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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 창조적 글쓰기

'불혹의 시대', 40세 이승엽을 주목하는 이유

 

(사진: 삼성 라이온즈)

 

 

[2015시즌 프로야구 이승엽의 마흔 살에 담긴 의미]

 

얘는~ 너 요즘 분위기를 모르는 구나. 요즘 마흔은 마흔이 아니야.”

 

40세가 된 누나에게 이제 늙은 것 아니냐고 놀렸다가 되돌아온 말이다. 누나의 논리는 명확했다. 40세의 의미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이다. 요즘 40세는 30, 30세는 20세로 10년 정도 낮춰서 봐야한단다.

 

이 무슨 해괴한 수학인가. 천재 뮤지컬 작곡가 조나단 라슨은 그의 작품 <틱틱붐> ‘30 90’이라는 노래에서 “1990년에 서른 살이 되는 것은 청춘의 종말이라고 했다. 알고 있는 상식도 청춘은 29세까지가 정답이다. 그런데 요즘의 마흔 살이 거의 청춘에 가까운 30세라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최근 우리사회에 자주 등장하는 코드 ‘100세 시대가 떠올랐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비하면 정말 마흔 살은 아직 어린 나이일 수 있다. 미디어를 봐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40대 연예인 미녀가 넘쳐난다. 예전에 마흔살 여자는 그냥 아줌마였다. '방부제 미모'라는 말은 과거에 없던 단어다. 심지어 얼마 전 TV에서는 90대 일반인 할머니가 놀라운 유연성과 근력으로 20대 사회체육과 학생들보다 링 체조를 능가하는 모습도 봤다.

 

올해 초 김정운 박사는 한 TV 강연에서 이와 관련해 매우 중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와 현재 시스템의 괴리다. “지금까지 모든 사회 시스템은 평균 수명 50세에 맞추어 있었다. 그런데 평균 수명에 50세에 맞춰진 가치로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살려니까 온갖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실제로 거의 한 세대인 70여 년 전인 1940년대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지금 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낮은 수치인 45세였다. 그리고 표에서 보는 것처럼 80년대 이전까지 남자의 평균 수명은 환갑 이후 2.7년을 더 사는 것에 불과했다. 요즘 환갑은 노인도 아니라는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사진: 경향신문(왼쪽) & 국가통계포털)

 

한국인의 평균 수명을 스포츠와 연계해보면 비슷한 시스템적 변이를 목격할 수 있다.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점진적으로 높아졌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을 예로 들면 그 당시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26.0세 였다. 그때는 방송에서도 심심치 않게 20대 후반만 되도 아나운서가 노장이라고 그랬다. 1982년은 김우열(당시 33) 등 실업야구의 나이 많은 베테랑들이 상당수 참가했음을 감안해도 26.0세였다. 이 통계는 40세의 원년 타격왕 백인천도 포함된 수치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1982년 국가대표 18명 선수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는 28세의 조광래와 이강조였다. 박성화가 27세로 뒤를 이었고 대표팀 평균 나이는 22.6세였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더 이상 20대 후반 선수를 노장이라고 불렀다가는 냉동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세상이 됐다. 1982년 이후 2015년에 이른 현재 33년 동안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5.2, 프로야구 선수의 평균 나이는 1.5세 증가했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10년 뒤인 1992년에도 그라운드에는 40세가 넘는 선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40세가 넘는 선수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축구 역시 2002년 월드컵대표팀 황선홍은 35, 홍명보는 34세였으며 올해 아시안컵에 출전했던 차두리는 35세의 나이도 폭풍질주가 가능함을 알려줬다.

 

선수들의 체격 또한 비약적으로 커졌다. 33년 동안 몸무게는 11.6kg (73.9kg85.5kg) 무거워졌고 신장도 6.2cm(176.5cm182.7cm)나 커졌다. 당시의 기사(1982년 경향신문)를 보면 OB 베어스의 강타자였던 김우열과 윤동균에 대해 좋은 체격으로 호쾌한 타격을 자랑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러나 이 두 명은 요즘 기준에서는 평균 신장에 못 미치는 176cm180cm가 안 되는 선수들이었다.

 

 

선수들의 평균 연령 증가에 따른 활약 할 수 있는 시스템 가동 시간의 증가는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적인 흐름이 됐다. 야구보다 더욱 격렬한 신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농구, 그중에서도 한국 프로야구 선수 보다 신체적 하드웨어가 우수한 선수들이 즐비한 NBA를 보면 실증할 수 있다.

 

유타 재즈의 명콤비였던 NBA 역사의 위대한 듀오존 스탁턴과 칼 말론은 30대 초반이었던 1990년대 초반 조나단 라슨이 “1990년에 서른 살이 되는 것은 청춘의 종말이라고 한 것 처럼 미국 현지에서도 노장 소리를 들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유타는 할아버지 선수두 명을 잊고 리빌딩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스탁턴과 말론은 30대 중후반으로 가도 전혀 기량이 녹슬지 않았다. 말론은 1997-1998시즌 35세의 나이로 평균 27.0득점 10.2리바운드로 팀을 서부컨퍼런스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NBA 퍼스트 팀에도 선정됐다. 이듬해 36세에는 MVP까지 받았다. 말론은 40살에도 평균 20.6득점을 기록했고 41살에 은퇴했다.

 

말론보다 한 살 많았던 스탁턴 역시 40살이었던 2001-2002시즌 82경기 전 경기를 평균 31.3분간 뛰며 13.4득점 8.2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무려 51.7%의 필드골을 기록했다. 스탁턴도 41살까지 코트를 뛰었다.

 

이 두 명의 선수는 특별하게 자기 관리에 철저한 선수들이긴 했지만 농구라는 스포츠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절대 단편적인 흐름이 아니다. 그래서 스탁턴과 말론의 이전 세대인 코비 브라이언트(LA 레이커스)가 최근 2년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37세의 나이로 마이클 조던의 통산 득점을 넘어선 것은 의미가 있다. 30대 후반에서 40세에 이르는 시간 동안의 선수들의 활약 기간이 늘어났다는 세계적인 흐름은 앞으로 평균 수명 증가에 따라 더욱 퍼져갈 가능성이 높다.

 

스포츠에서 구성원들의 높아진 평균 연령은 사회의 노령화와는 달리 늘어난 활동기간이라는 측면에서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33년 동안 프로야구 선수의  증가된 평균 나이 1.5년은 선수의 커리어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수 있다. 올 시즌부터 프로야구에 적용되는 팀당 144경기를 기준으로 1.5시즌은 216경기에 해당한다. 규정타석 타자로는 최소 712타수 더 기록할 수 있고, 규정이닝 투수도 최소 216이닝 더 마운드에 설 수 있다.

 

야구에서 특정 선수의 712타석과 216이닝은 선수뿐만 아니라 전체 프로야구의 구조와 역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영화 <미스터 3000>에서 주인공 스탠 로스는 메이저리그에서 3,000안타를 때리자마자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데 9년이 지난 어느날, 3,000안타 기록에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안타 3개를 채우기 위해 현역으로 복귀한다. 영화 속 허구지만 때로는 안타 1개와 삼진 1개가 매우 소중해지는 시간을 실제 선수들은 마주한다. 지난해 2.7타수당 1안타를 기록한 서건창(넥센 히어로즈)이 스탠 로스였다면 263개의 안타가 그의 선수 경력에 더 추가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 영화 <미스터3000>포스터(왼쪽), MBC)

 

그러나 여전히 한국프로야구의 시스템은 아직은 증가된 평균 수명·평균 나이와 괴리가 있는 주저하는 과도기에 서있다. 실제로 한국사회는 프로야구 투수의 정년을 명시적으로 35세라고 못 박은 적이 있다.

 

1992년 부산고등법원은 전 롯데 자이언츠 투수였던 조용철이 한보종합건설과 부산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우리나라 프로야구 투수는 만 35세까지 종사할 수 있으며 만 35세 이후부터는 남은 노동력으로 최소한 도시일용노동이나 유사직종에 종사할 수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판시한 적이 있다.

 

23년 전 법의 잣대로 바라본 투수의 정년이 지금 보면 충격적인 35세다. 이 판결 이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72.2세에서 81.9세로 거의 10년 늘었다. 이 판결대로라면 2015년 한국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선발 로테이션은 무너진다.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윤성환은 그때 야구를 했다면 35세에 FA 계약을 맺은 ‘4년간 80억 원 투수가 아니라 판시문 대로 도시일용노동자 되어야 정상적이다.

 

물론 이제는 이런 가정이 희화화 될 정도로 한국 프로야구도 평균 수명 증가에 따른 시스템적인 발전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흔 살이라는 투명한 벽은 존재한다. 왜 윤성환은 40세가 아닌 39세까지만 FA 계약을 했을까.

 

윤성환 뿐만 아니다. 대부분 구단의 FA계약에는 40세는 23년 전 35세가 투수의 정년이라는 법원의 판결과 유사한 시각이 묻어있다. 3년 전 진갑용은 37세에서 39세까지 2년간 삼성과 FA계약을 했고, 지난해 박용택도 40세까지 뛰는 것에 LG 트윈스와 도장을 찍었다. 이병규는 43세까지 LG와 계약했지만 그 이전에 40세까지의 계약을 한 번 거쳤다.

 

이처럼 아직 한국 프로야구에 불혹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 밖에 서있는 것이 미래라고 했다. 프로야구 선수의 마흔 살이 더 이상 정년이 아닌 시대가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의학과 과학의 발전은 평균 수명을 늘리고 선수의 평균 연령과 평균 활동 기간을 증가시킨다. 학자들은 2050년에 평균 수명이 90세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더 극단적으로 평균 수명이 150세라고 해보자. 그때도 마흔 살이 선수들의 정년이 될 수 있을까.

 

 

(사진: 삼성 라이온즈)

 

 

2015년 사회의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때, 그래서 야구에서도 국민타자이승엽을 주목하게 된다. 한국야구 타자 가운데 이승엽 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선수는 없다. 후배들에게는 여전히 리빙 레전드로 존경을 받는 선수이기도 하다.

 

이승엽은 야구선수가 불혹의 시대를 열어감을 증명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선수다. 창조자들은 항상 변화한다. 이승엽은 대표적인 그라운드의 크리에이터다. 현상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해왔다.

 

야구에서 표현 할 수 있는 승부 근성 등 정신력과 신체적으로 박수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활약을 보여줬다. 어려울 때마다 위기를 극복했고 결국에는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다. 그래서 프로야구 선수에게 보이지 않는 정년의 벽이라는 40세를 맞은 이승엽이 어떠한 야구를 펼칠 지는 많은 야구인뿐만 아니라 향후 이승엽을 목표로 하는 야구 유망주들에게도 큰 밑그림이 된다. 이땅의 많은 40대 남성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마흔 살 이승엽을 주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38(0.253, 13홈런, 69타점)보다 39(0.308, 32홈런, 101타점)의 기록이 더 좋았다는 점이다. 그는 최근 언론을 통해서 2014년이 54홈런을 쳤던 1999년이나 56홈런을 기록했던 2003년보다 더 짜릿하다고 말할 정도로 39세의 활약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다가오는 마흔 살 시즌 기록의 느낌은 더할 것이다.

 

이승엽이 올 시즌이 끝나고 은퇴를 하더라도 ‘40세 이승엽의 2015시즌은 그 자체로 야구 시스템과 야구사에 큰 전기가 될 것이다. 이 글을 포함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마흔 살 이승엽이라는 키워드는 자칫 올 시즌 그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싱크탱커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부담과 압박이 커질수록 이승엽은 더욱 벽을 허물고 잘해냈기에.

 

마흔 살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모든 것에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 나이라고도 했다. 이 말에는 흔들렸던 불같은 청춘을 차분히 정리해야 한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이제 100세 시대 시스템에 맞게 이 말에 수정을 해야겠다. 21세기의 마흔 살은 청춘의 정리가 아니라 여전히 창조적인 젊음을 펼칠 수 있는 나이다.

 

그리고 동시에 부가적인 청춘을 얻은 이상 자신의 책임을 얼굴에만 국한시켜서는 안 될 정도로 진중한 책임감도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상 대통령이 될 수 있는 피선거권을 가지기 시작하는 마흔 살은 자신의 얼굴뿐만 아니라 국가까지 책임질 수 있는 중요한 나이이기 때문이다.

 

By ThinkTa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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